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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기독교 선교기념관
1. 헌당식
한국에 복음을 전해준 역대 선교사들과 서구문물을 전해준 구미인사들의 유덕을 기리고 이에 감사의 뜻을 표하고자 하는 선교기념관이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 묘지공원 안에 세워져 86년 10월 10일 헌당식과 함께 개관됐다.

이날 오후 2시부터 기념관 2층 예배처소에서 열린 헌당식에는 윤보선 전대통령내외 · 염보현서울시장 · 윤치영장로 · 김일환장로 · 오재경씨 · 이동원씨 · 봉두완의원 · 노승환의원 등 전 · 현직 정계인사, 언더우드박사와 사우어교수 등 50여 명의 초대선교사 후손들, 그리고 재단법인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 협의회이사장 한경직목사를 비롯, 강원용 · 정진경 · 서병주 · 림인식 · 박종성 · 신신묵목사와 전택부 · 최태섭 · 최창근장로 등 원로급 교계 지도자들과 평신도 등 모두 500여명이 참석했다.

강병훈목사가 사회한 헌당식은 묵도와 샤롬여성성가단의 송영으로 시작되어 최훈목사의 축도, 최태섭장로의 성경봉독, 강원용목사의 말씀, 오건장로의 건축경과보고, 한경직목사의 봉헌사, 정연희집사의 기념비문 낭독, 염보현시장의 축사, 원일한박사의 감사의 말씀, 서병주목사의 축도 등의 순으로 진행된 뒤 외국인연합교회가 준비한 축하연이 있었다.

< 한국기독교 선교기념관 >

한경직목사는 헌당식에서 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를 대표하여 기념관 건립에 노고가 켰던 김광욱 동양건축사무소장 · 이준삼풍건설사장 · 이창준이사 · 임효일 호록원대표 · 이강필집사 등 5명에게 감사패를 수여하고 기념관 건립을 지원한 정이숙권사 · 박용학회장 · 김우중회장 · 정주영회장 · 장치혁회장 · 김덕윤권사 · 백성학사장 · 최창근장로 · 홍순기장로 · 황규빈회장 · 최순영장로 · 조용기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 정태성장로 · 이병익장로 등 15명에게 회원패를 수여했다.

헌당식 직전 교계지도자들과 내외귀빈들은 기념관 준공에 때맞추어 정연희집사의 글을 새겨 기념관 앞뜰에 세운 기념비 제막식을 가졌다.

헌당식에서는 "헌건사"가 낭독되었다.
헌건사 : "우리 재단법인 한국기독교백주년기념사업협의회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이 선교기념관 건축과 외국인묘지공원 조성의 거룩하고도 거대한 일을 작정하고 건축위원으로 맡겨 주셨으므로 부르심에 감격하여 한국교회와 유지들이 기도와 정성을 다하여 협조하여 주셨으므로 모든 공사를 은혜 가운데 마치었습니다. 우리가 주를 위하여 건축한 이 선교기념관은 영원토록 주님의 것입니다. 본 건축위원회는 이 새로 지은 선교기념관 열쇠를 재단법인 책임자이신 이사장님께 드리오니 하나님을 예비하며 많은 심령을 구원하고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크게 이바지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 내시기를 빕니다."
(1986년 10월 10일 건축위원장)
2. 기념관개요
건립취지 및 건립경위
양화진 외국인 묘지 공원내에 들어선 선교기념관은 한국에 복음을 전해준 역대 선교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선교업적을 길이 기념하고 아울러 개화기에 서구의 문물을 들여와 한국의 근대화에 공헌한 구미 각국 인사들의 업적에도 감사하는 뜻으로 세워졌다.

1985년 1월 14일 제단법인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사업협의회는 제5차 총회에서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성금으로 양화진외국인 묘역에 기독교 100주년을 기리는 큰 사업의 하나로 한국기독교 선교기념관을 건축키로 결의, 건축위원회를 구성하고 그해 6월 28일 기공예배와 함께 공사에 착수했다. 1년 2개월만인 1986년 8월 20일에 건조물 및 토목공사가 준공되고 9월 10일까지 조경공사까지 완료, 10월 10일에는 헌당예배 가 있었다.
규모 및 시설
토목공사와 건축공사비로 5억 2천 5백만원 ·조경비로 3천만원, 총 5억 5천 5백만원이 쓰여진 선교기념관은 조형면적 1천 5백평, 지하 1층 · 지상 3층에 연건평 350평의 규모로 묘지공원 동쪽언덕에 2호선 전철과 한강을 마주보고 거대한 탑과도 같이 우뚝 솟아있어 양화진 일대의 빼어난 경관과 한데 어울려 보는 이들에게 경건한 마음을 자아내게 해준다.

전면의 외관은 합죽선을 펴듯 가장 높은 중심선에서 약간 후진하며 종으로 단(段)을 이루어 연속성을 나타냄으로써 하나님을경배하는 자세가 강조되었다. 건물 외부재료는 우리나라 고유의 내구성이 강한 화강석을 사용해 기념성과 상징성을 드러냈고 주요 창문은 스테인드 글래스를 사용하여 아름답고 우아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다.

이 기념관은 동양건축주식회사의 설계와 감리로 삼풍건설주식회사가 시공했으며 기념관 준공에 때맞취 기념관 앞뜰에 세워진 기념비문은 소설가 정연희집사가 지었다.
선교기념관 개요
1. 착공 : 1985. 6. 28
2. 헌당 : 1986. 10. 10
3. 조형면적 : 1,500평.
4. 연건평 : 350평(지항 1층 · 지상 3층).
5. 공사비 : 5억 5천 5백만원.
6. 건물내용
1층 : 선교기념실 · 자료전시실 · 사무실.
2층 : 대강당 · 예배소(3층 일부포함).
3층 : 회의실 · 교육실 · 목회자실.
지하 : 식당 · 친교실 · 다목적실 · 기관실
건축위한 재정위원회
위원장 : 최창근
부위원장 : 김경래, 유상렬
위원 : 강병훈, 강성모, 고평식, 김덕윤, 김동수, 김인득, 박순양, 박용학, 박치순, 서정한, 신영균, 양광석, 유상근, 이병익, 이형자, 장치혁, 정해숙, 주경효, 최기만, 최태섭, 최 훈
건축위원회
위원장 : 최순영
부위원장 : 이창로, 오 건
위원 : 김일환, 김정철, 박창원, 배태준, 이 준, 정이숙, 지원상
상임이사 : 강병훈
사무국장 : 전재성
담당실무국장 : 김경래
3. 선교기념관 용도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는 1986년 10월 10일 선교기념관 헌당식 후 자체의 사무실을 선교기념관으로 옮기려던 계획을 보류하고, 당시 일정한 예배처소가 없었던 외국인연합교회(서울유니온교회)가 선교기념관 전체를 단독 예배당으로 무상 사용토록 배려했다.
그 후 2005년 7월 부터는 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가 양화진과 용인 순교자기념관 관리를 위하여 세운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와 공동으로 선교기념관을 예배처소로 사용하였는데, 2007년 8월 선교기념관의 합법적 용도는 "묘지관리 사무소"임을 확인한 마포구청은 "선교기념관의 예배당 용도 사용불가"를 통보하여 왔다.
그 이후 현재 선교기념관은 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 사무실 및 회의실, 양화진연구원, 양화진 참배객 안내, 비정기적 선교사 추모예배 용도 등으로 사용되고 있어 양화진에 묻히신 선교사들의 헌신을 기리고 한국기독교 선교를 기념하는 본래의 건립 취지에 맞게 사용되어지고 있다.
4. 양화진의 유래
양화진(楊花津)은 예로부터 20세기 초엽까지 한강 남쪽 경기도 연안의 매우 중요한 나루터로서 해상 운송에 큰 몫을 했으며 이조 영조 30년(1754)년에는 송파진 · 동작진 · 노량진 · 한강진과 더불어 서울을 지키는 5진(鎭)의 하나가 되어 군사적으로도 극히 중요한 자리였다.

1866년 병인년의 천주교박해 때 9명의 프랑스 신부를 비롯, 8천여명의 천주교도가 이곳 양화진 잠두봉(蠶頭峰)에서 처형당하자 프랑스 인도지나 함대가 한강으로 침입하여 병인양요를 일으켰다. 이해 8월 프랑스 해군의 로즈제독은 2척의 군함을 몰고 한강을 거슬러 올라 양화진까지 정찰을 하고 간뒤 다음달에 다시 군함 7척을 이끌고 강화도에 상륙하여 정족산성싸움에서 패하자 강화성에 불을 지르고 한문서적등을 탈취하여 철수했었다.

천주교인의 대량 학살로 원래잠두봉 또는 덜머리(加乙頭), 용두봉(龍頭峰)등으로 불리던 언덕이름이 오늘날에는 절두산(切頭山)으로 바뀌었다.

1880년대초 구미열강제국과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굳게 닫혔던 쇄국의 문이 열리자 1884년 미국의 의료선교사 알렌(H. N. Allen, 1858 ~ 1932)이 처음 입국한 것을 시작으로 다음 해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뒤따르는 등 미국의 선교사들이 잇달아 내한, 의료와 교육사업을 통해 선교활동을 전개했다.

1890년 7월 26일 미국 북장로교회의 의료선교사로서 고종의 시의(侍醫)이기도 했던 헤론(Joh W. Heron, 1850 ~ 1890)이 급환으로 세상을 떠나자 법에 따라 성내에 시신을 매장하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고 민간에서도 묘터를 팔려는 사람이 없어 묘지마련에 큰 시련을 겪게 되었다.

이때만 해도 조선땅에서 사망하는 외국인은 1883년 제물포항 해안 언덕에 국내에서는 최초로 마련된 외인묘지에 매장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여름 염천에 거기까지 시신을 운구할 길이 없었으며 법을 어기고 도성안에 매장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힘든 노롯이었다.

유족과 선교사들은 조선조정에 한성 가까이 묘지로 쓸만한 땅을 내어 줄 것을 간청했으나 조정에서 묘지로 지정해준 곳은 한강 건너편 야산기슭 모래밭이어서 묘지로 쓸 수 없는 땅이었다.

하는 수 없이 시신을 밀봉하여 헤론이 살던 집 뒤뜰에 매장할 작정을 했으나 선교사들을 도와주던 서생들이 한사코 반대하였다. 이러던 중 미국공사관과 조선조정의 신임을 받고 있던 알렌이 어려운 교섭 끝에 경관이 아름다운 양화진 언덕을 사용토록 허가받아 이곳에 헤론을 처음 묻음으로써 오늘의 외국인묘지공원의 터를 잡게 되었다.

1986년 9월 현재 이 묘지에서 헤론을 비롯하여 개화기 우리나라에 와서 선교 · 교육 · 의료 등 다방면에 걸쳐 활약한 많은 외국인들과 고국에서 태어났더라면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 어린 자녀 등 그 가족들이 애뜻한 노스탤지어를 달래며 잠들어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나란히 손잡고 펴던 선교사 부부도 있고 고국에 돌아가 여생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날 때 육신을 한국땅에 묻어달라고 유언한 이도 있다. 생전에 종사한 분야를 보면 선교사가 가장 많으나 다른 직업에 종사한 이들도 거의가 '은둔의 나라',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불리우던 이국땅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들었던 선각자들이 었다.

한편 4천여평의 이 묘역에는 선교사 75명을 포함하여 미국인 235명, 백계러시아인 54명, 영국인 30명, 프랑스인 25명, 호주인 12명, 일본인 1명 등 375명의 외국인들과 100여명의 고아를 포함, 120여명의 한국인 등 모두 500여명이 잠들고 있다.

이 묘역의 이름은 일제 때 경성구미인 묘지로 불리우다가 해방후 서울 외국인 묘지로 바뀌었고 86년 선교기념관의 건립과 함께 서울 외국인 묘지공원으로 개칭되었다.

그후, 양화진이 '한국개신교의 최고 성지'로 재인식되면서, 2005년 양화진에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가 설립되었고 이 묘역은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으로 개명되었다.